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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낙서/음악

순정률과 중간음률, 그리고 그 너머 (1)

by 두들낙서 2021. 3. 23.

우선 당신이 이 글을 우연이 아니라 정말로 흥미나 필요에 의해 찾게 되었다면 하이파이브를 쳐주고 싶다. 중간음률이라는 단어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전공생은 제외하고, 취미가 음악(감상이든, 연주든, 작곡이든)이라는 사람들의 수를 100명이라 하면, 그 중 순정률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사람들의 수는 넉넉잡아야 한 10명 정도 될 것 같다. 그리고 그중 중간음률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사람의 수는 많아야 1~2명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매니악한 분야이고, 특히 한국어로 된 것 중에서는 수학적인 원리와 음악적인 면을 모두 잘 나타낸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글을 적어보게 되었다.

1. 기본 개념

이 글의 배경이 되는 개념들을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찬찬히 살펴보자. 이 개념들은 앞으로는 익숙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것이다.

소리는 어떤 물질의 진동이 매질(보통 공기)을 진동시키고, 그 매질의 진동이 다시 고막으로 전해져 그 정보가 뇌로 전해지는 것이다. 이때, 소리를 내는 매질이나 공기가 1초에 몇 번 떨리는가를 진동수라고 한다.

음높이란, 말 그대로 소리의 높낮이를 말한다. 음높이를 결정짓는 요소는 소리의 진동수이다. 진동수가 높을수록 "높은 소리"라고 부르며, 낮을수록 "낮은 소리"라고 부른다.

음정이란, 두 음 사이의 간격을 말한다. 상대음감이 있다면, 음정을 구별해낼 수 있다. 절대음감과는 다르게 상대음감은 훈련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 음정이 같다는 것은, 두 소리의 진동수 사이의 비율이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Hz:200Hz 사이의 음정은 150Hz:300Hz 사이의 음정과 같다.

음계는 여러 음정들의 집합이다. 예를 들어 도, 레, 미, 파, 솔, 라, 시로 이루어진 장음계는 완전1도, 장2도, 장3도, 완전4도, 완전5도, 장6도, 장7도라는 음정으로 이루어진 음계이다.

음률이란, 음계의 각 음정들이 정확히 어떤 수학적인 비율을 갖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균율이라는 음률에서는, 모든 반음(단2도)들이 정확히 \(1:2^{1/12}\)의 비율을 가져야 하지만, 순정률이라는 음률에서는 모든 단2도들이 15:16의 비를 갖는다. 또, 평균율에서는 단2도와 증1도가 같은 비율을 갖지만, 순정률에서는 증1도가 24:25라는 비율을 가진다. (상황에 따라서는 더 기괴한 비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 개의 비율(평균율에서의 단2도, 순정률에서의 단2도와 증1도)을 직접 계산해보면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 귀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이 둘의 차이를 구별할 수가 없을 것이고, 이 글처럼 음률에 관해 자세하게 적힌 글이 인터넷에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19세기 이후로 주류 서양 음악은 순정률을 버리고 평균율로 완전히 갈아탔고, 그 관습이 현대 대중 음악에 똑같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2. 평균율 (Equal Temperament)

우선 평균율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면, 이 글이 글을 먼저 읽고 오기 바란다.

평균율은 여기서 소개할 음률 중 가장 나중에 실현된 것이지만, 이 글의 목적에 맞게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평균율부터 설명해보겠다.

평균율이란 한 옥타브를 균등한 간격(보통 12간격)으로 쪼갠 것을 말한다. 즉, 쪼개고 난 다음에는 인접한 음 사이의 진동수비가 모두 \(1:2^{1/12}\)이 된다.

즉 C와 C#(Db) 사이도 \(1:2^{1/12}\), C#(Db)과 D 사이도 \(1:2^{1/12}\), ... 이런 식이다. 현대의 대부분의 피아노, 기타, 리코더, 플루트 등 음이 딱 규정되어 있는 악기(반면 바이올린 같은 악기들은 낼 수 있는 음이 딱딱 정해져 있지 않고 연속적이다.)는 평균율을 따른다.

평균율에서는 조를 옮겨도 음높이는 변하지만 음정이 변하지 않는다. 이게 평균율의 유일한 장점이지만 너무 중요한 장점이라 아직까지 이것 때문에 평균율이 연명하고 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겠다.

넘어가기 전에, 음률을 논할 때 많이 사용되는 개념인 센트(cent)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센트는 12음계 평균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센트는 평균율의 반음을 100등분한 것이다. 따라서 한 옥타브는 항상 1200센트이고, 평균율에서 단2도는 100센트, 장2도는 200센트, 이런 식이다.

수학을 조금만 동원하면 센트 값과 진동수비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 있다. 단순 고등학교 수학이다. 유도가 궁금하다면 직접 해보기 바란다.

음정이 \(c\)센트이면, 진동수비는 \(1:2^{c/1200}\)이다.

또, 진동수비가 \(1:f\)인 음정을 센트로 나타내면 \(1200\log_2{f}\)이다.

평균율이 아닌 다른 음률에서는 같은 단2도 화음이더라도 100센트가 아닐 수 있다. 음정이 나타내는 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3. 피타고라스 음률 (Pythagorian Tuning)

다시 과거로 돌아와서,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음률인 피타고라스 음률을 보겠다. 피타고라스는 진동수비가 2:3인 화음이 조화롭다고 생각했다. 보통 이렇게 진동수의 비가 2:3인 화음을 완전5도 화음이라 부른다. 평균율에서는 완전5도가 2:3이 아니라 \(1:\left(2^{1/12}\right)^7=1:2^{7/12}\)의 비율을 갖는다. 하지만 계산해보면 두 값이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비율을 기반으로 만든 음률을 피타고라스 음률이라고 한다. 기준음을 C라 하고, 이에 대해 완전5도인 G가 C에 대해 2:3의 비를 가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12음계의 모든 음의 상대적인 비율을 정할 수 있다. 표의 왼쪽 부분은 단순히 5도씩 올라가거나 내려가면서 상대적인 진동수를 적은 것이고, 오른쪽 부분은 모든 음들이 같은 옥타브에 있도록 옥타브만 조절한 것이다.(한 옥타브는 음률에 상관없이 항상 1:2이다.)

음이름 상대 진동수 음이름 상대 진동수
Gb0 64/729≈0.0878 Gb4 64/729×16≈1.405
Db1 32/243≈0.132 Db4 32/243×8≈1.053
Ab1 16/81≈0.198 Ab4 16/81×81.580
Eb2 8/27≈0.296 Eb4 8/27×41.185
Bb2 4/9≈0.444 Bb4 4/9×4≈1.778
F3 2/3≈0.667 F4 2/3×2≈1.333
C4 1 C4 1
G4 3/2=1.5 G4 3/2=1.5
D5 9/4=2.25 D4 9/4/2=1.125
A5 27/8=3.375 A4 27/8/21.688
E6 81/16≈5.06 E4 81/16/4≈1.266
B6 243/32≈7.594 B4 243/32/4≈1.898
F#7 729/64≈11.391 F#4 729/64/8≈1.424

하지만 이 비율 값들은 음악으로 사용되기에 적절하지 않다. 이상적인 장3도는 4:5의 진동수비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위에서 구한 1.266은 4:5(=1:1.25)와 상당히 멀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웬만한 사람들의 귀에도 들릴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두 화음을 들어보자. 차이가 느껴지는가? 느껴진다면 아마도 4:5가 더 편안하게, 혹은 조화롭게 들릴 것이다.

4:5

64:81

4. 순정률 (Just Intonation)

순정률은 한 가지 음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음률의 한 종류이다. 순정률에서는 모든 음정이 최대한 간단한 유리수 비를 갖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그래야 우리에게 조화롭게 들린다.

피타고라스 음률도 어쨌든 모든 음정이 유리수 비를 갖기 때문에 순정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았듯이 3도 화음을 조화롭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모든 비율을 2와 3으로만 만들기 때문에, 비율에서 가장 큰 소인수는 3이다. 이런 음률을 3-제한 음률이라 한다.

하지만 장3도의 조화로움을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5-제한 음률을 쓸 것이다. 이 음률의 목표는 피타고라스 음률을 수정해서 가능한 한 많은 장3도를 4:5 비율로 조정하는 것이다.

장음계의 음들만 순정률로 나타내 보자. 그러기 위해서 F:A:C = C:E:G = G:B:D = 4:5:6 라는 기본 법칙(?)을 적용할 것이다.

위의 비율대로 열심히 계산을 하면 다음과 같은 관계를 얻는다. 자세한 계산 과정은 이 글에 나와있다.

음이름 C D E F G A B
상대 진동수 1 9/8 5/4 4/3 3/2 5/3 15/8

순정률로 맞춰진 CM7 코드를 한번 들어보자. 순정율은 좀더 아련하게, 평균율은 좀더 날카롭게 느껴진다. 사실 순정 장3도(앞으로는 4:5 비율을 갖는 음정을 이렇게 부르도록 하자.)와 평균율 장3도는 14센트 정도 차이가 난다. 반음의 0.14배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굉장히 작은 양이라 처음에는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계속 듣다 보면 이 정도 차이는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순정률 CM7

평균율 CM7

장음계만 5-제한 순정률로 만들어 보았지만 벌써 문제가 생긴다. D와 A는 완전5도가 되어야 한다. 즉 A에서 완전5도 내려오면 D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의 비율대로 해서 A에서 완전5도 내려온 음의 상대 진동수를 계산해보면, \(\frac{5}{3}\times \frac{2}{3}=\frac{10}{9}\)이므로 D의 상대 진동수인 \(\frac{9}{8}\)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D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이기 때문에 생긴다. 첫째 경로는 2:3 비율만을 사용하는 데 비해 둘째 경로는 5:4 비율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C ---(\(\times \frac{3}{2}\))--> G ---(\(\times \frac{3}{2}\))--> D

C ---(\(\times \frac{4}{3}\))--> F ---(\(\times \frac{5}{4}\))--> A ---(\(\div \frac{3}{2}\))--> D

이 서로 다른 두 진동수의 비는 정확히 81/80인데, 이 간격을 syntonic comma라고 부른다. (안타깝게도 이 용어는 우리말로 된 번역이 없다.) comma라는 것은 음 사이의 간격이기는 하나, 음정이라기에는 너무 작은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는 두 가지 옵션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1. 지금의 체계를 유지하되, A에서 5도 내려간 음과 G에서 5도 올라간 음을 다른 음으로 본다.

2. 약간의 타협을 통해, A에서 5도 내려간 음과 G에서 5도 올라간 음의 상대 진동수가 같도록 지금의 체계를 수정한다.

여기서 2번을 선택한 것이 다음 글에서 설명할 중간음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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