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시리즈이다. 이전 글을 못 봤다면 보고 오는 게 좋다.
5. 중간음률 (Meantone Temperament)
중간음률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보통 중간음률이라 하면 "1/4콤마 중간음률"(quarter-comma meantone temperament)을 말한다.
이 무시무시한 이름에 들어있는 의미는, 중간음을 만들 때 syntonic comma의 1/4만큼씩을 보정하겠다는 뜻이다. 중간음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뭘 보정한다는 것일까?
피타고라스 음률이 기억 나는가? 피타고라스 음률을 사용해 C에서 E까지 가보자.
$$ C4 \xrightarrow{ \times \frac{3}{2} } G4 \xrightarrow{ \times \frac{3}{2} } D5 \xrightarrow{ \times \frac{3}{2} } A5 \xrightarrow{ \times \frac{3}{2} } E6 $$
3/2를 4번 거치면 C4에서 E6까지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갔을 때 C와 E의 진동수비가 64:81이었다. 이 값이 순정 장3도인 4:5와 얼마나 차이가 날까? 81/64을 5/4로 나눠보면 익숙한 숫자가 나온다. 바로 syntonic comma이다. 결국 syntonic comma는 "피타고라스 음률의 장3도와 순정 장3도의 차이"로 정의될 수 있다.
이제 수학적인 두뇌를 굴려보자. 우리가 원하는 목표는 장3도를 아름답게(4:5의 비율을 갖게) 만드는 것인데, 피타고라스 음률의 장5도를 얼만큼 보정하면 C에서 E까지 도달했을 때 완벽한 장3도가 나올까?
정답은 한 번 곱할 때마다 \(\sqrt[4]{5}\) 씩 곱하는 것이다. 4번 곱해지면 E6의 상대 진동수가 정확히 5가 될 텐데, E6를 두 옥타브 낮추면 상대 진동수가 5/4가 된다. 즉 C와 E 사이, 장3도는 5/4가 된다.
$$ C4 \xrightarrow{ \times \sqrt[4]{5} } G4 \xrightarrow{ \times \sqrt[4]{5} } D5 \xrightarrow{ \times \sqrt[4]{5} } A5 \xrightarrow{ \times \sqrt[4]{5} } E6 $$
이렇게 하면, C와 E 사이의 비(장3도)는 정확히 4:5일 것이다. 하지만 C와 G 사이의 비(완전5도)는 3/2보다 살짝 작아진다. 얼마나 작아지냐, 5도를 4번 진행했을 때 피타고라스 음률보다 1 syntonic comma씩 낮아지니까, 한 번 5도씩 진행할 때마다는 1/4 syntonic comma씩 낮아지는 것이다. 결국 피타고라스 음률에서, C에서 E까지 가는 중간 과정에서 나오는 음정인 완전5도가 1/4 syntonic comma만큼 낮아지도록 보정하면, 5도를 4번 올라갔을 때 완벽한 장3도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1/4콤마 중간음률이라는 용어의 의미에 대한 의문이 풀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완전5도가 완벽하지 않은 것에 대해 찝찝함이 남는가? Syntonic comma를 센트로 변환하면 21.5센트이다. 완전5도가 이 한 콤마의 1/4, 즉 21.5센트의 1/4인 약 5.4센트밖에 낮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타협이 과연 앞 글에서 본 5-제한 순정률보다 나은 걸까? 물론 C, F, G같은 단순한 코드들은 정확히 4:5:6 비율을 가지기 때문에 순정률로 했을 때가 낫다. 하지만 C, F, G 코드로만 구성된 곡은 많지 않다. 실용적인 음률이 되려면 D, E, Dm, Am와 같은 코드들도 조화롭게 들려야 한다. 순정률에서 Dm 코드를 구성하는 D:F:A의 진동수 비율을 따져보면, F와 A 사이(장3도)는 딱 4:5이지만, D:F(단3도) = 27:32, D:A(완전5도) = 27:40이라는 비율을 갖는다.
D음을 기준으로 F, A가 가져야 할 이상적인 진동수비와, 5-제한 순정률과 중간음률로 나타냈을 때의 진동수비와 센트 값을 모두 표로 나타내 보자. 중간음률이 대체로 이상적인 진동수비의 센트 값과 더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상적인 완전5도의 센트 값인 702.0에서 1/4콤마의 센트 값인 5.4센트를 빼보면 실제로 중간음률에서의 완전5도의 센트 값인 696.6이 나오는 것도 확인해볼 수 있다.
음이름 | 5-제한 순정률 | 중간음률 | 이상적 | |||
진동수비 | 센트 | 진동수비 | 센트 | 진동수비 | 센트 | |
D | 1 | 0 | 1 | 0 | 1 | 0 |
F | 32/27 | 294.1 | \(\frac{4}{{\sqrt[4]{5}}^3}\) | 310.3 | 6/5 | 315.6 |
A | 40/27 | 680.4 | \(\sqrt[4]{5}\) | 696.6 | 3/2 | 702.0 |
실감을 해보기 위해, 순정률을 사용한 Dm 코드와 중간음률을 사용한 Dm 코드를 비교해보자.
순정률
중간음률
피타고라스 음률의 방법을 사용하되, 말한 대로 1/4콤마씩 보정을 해나가는 방식으로 12음계의 음들을 모두 만들어 보자. 식은 생략하고 근삿값만 표에 적겠다.
음이름 | 상대 진동수 | 음이름 | 상대 진동수 |
Gb0 | 0.089 | Gb4 | 1.431 |
Db1 | 0.134 | Db4 | 1.070 |
Ab1 | 0.2 | Ab4 | 1.6 |
Eb2 | 0.299 | Eb4 | 1.196 |
Bb2 | 0.447 | Bb4 | 1.789 |
F3 | 0.669 | F4 | 1.337 |
C4 | 1 | C4 | 1 |
G4 | 1.495 | G4 | 1.495 |
D5 | 2.236 | D4 | 1.118 |
A5 | 3.344 | A4 | 1.672 |
E6 | 5 | E4 | 1.25 |
B6 | 7.477 | B4 | 1.869 |
F#7 | 11.180 | F#4 | 1.398 |
표에서 알 수 있듯, F#과 Gb은 "같은" 음이어야 하는데 (이것을 이명동음적 상등; enharmonic equivalence이라고 한다.) 상대 진동수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수학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C에서 출발해 \(\sqrt[4]{5}\)만을 곱해서 만든 음(F#)과 \(\sqrt[4]{5}\)만을 나눠서 만든 음(Gb)이 같은 음일 리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왜냐하면 F#과 Gb이 같다고 이야기할 때에는 12음계 평균율을 사용한다는 전제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서 당연히 F#과 Gb이 같은 음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러면 중간음률 역시 문제가 있는 시스템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자세한 건 바로 뒤에서 설명한다.
6. 중간음률의 화성학
Dm 코드부터 제대로 표현이 어려웠던 순정률과는 달리, 중간음률에서는 굉장히 많은 화음들을 정확히(완전5도의 1/4콤마 차이를 무시하면) 표현할 수 있다. 위의 표에는 13가지 음이 나와있는데 이 중에서 Gb을 뺀 나머지 12개의 음들로 12음계를 구성했다고 치자. 그러면 메이저 코드 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화음들이 "정확히" 표현된다. 화음의 이름을 먼저 적고, 괄호 안에는 구성음들의 이름을 적었다.
Db (Db, F, Ab) / Ab (Ab, C, Eb) / Eb (Eb, G, Bb) / Bb (Bb, D, F) / F (F, A, C) / C (C, E, G) / G (G, B, D) / D (D, F#, A)
그 외의 메이저 코드들은 4:5:6의 비율을 갖지 못한다.
비슷하게 다음과 같은 마이너 코드들도 "정확히" 표현된다.
Bbm (Bb, Db, F) / Fm (F, Ab, C) / Cm (C, Eb, G) / Gm (G, Bb, D) / Dm (D, F, A) / Am (A, C, E) / Em (E, G, B,) / Bm (B, D, F#)
고전 화성학을 잘 알고 있다면, Gb와 F#이 이명동음적 상등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Gb와 Bb은 장3도이지만, F#와 Bb 사이는 장3도가 아닌 감4도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중간음률에서 Db 화음이 "정확히" 표현되지만 Gb 화음은 그렇지 않은 것이 이 사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Gb 화음을 구성하는 음은 Gb, Bb, Db인데, 우리가 처음에 12음계를 만들 때 Gb 대신 F#을 사용해서 구성하자고 했기 때문에, 우리 12음계에는 Gb에 해당하는 음이 없고 F#만 있다. Gb 화음을 억지로 F#, Bb, Db을 사용해서 만들어봤자 F#과 Bb, 그리고 F#과 Db의 사이가 4:5 및 2:3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화음을 만들 수 없다. 이때 발생하는 F#과 Bb 사이의 음정을 감4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F#에서 4도만큼 올라가면 B이고, 여기서 B를 flat하게 만들어(감소시켜) 감4도를 만드는 것이다.
비슷하게, D와 F# 사이는 장3도이지만, D와 Gb 사이는 감4도이다. 이것은 중간음률에서는 다른 음정이다. 또, Eb과 F# 사이는 증2도이고, 역시 단3도와는 다른 음정이다.
이제 좀더 실용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 실제로 16~17세기쯤 중간음률이 대세(?)이던 시절에 나온 오르간을 보면, 보통 다음 음들로 12음계가 구성되어 있었다.
Eb, Bb, F, C, G, D, A, E, B, F#, C#, G#
추정컨대, A 화성단음계(A, B, C, D, E, F, G#, A)나 A 상행가락단음계(A, B, C, D, E, F#, G#, A)만 보더라도 G#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을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Ab과 그 "아래"로는 갈 수가 없고 Eb부터 G#까지의 음들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F단조, 특히 화성단음계에 잠시 주목해보자. F 화성단음계는 F, G, Ab, Bb, C, Db, E, F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위의 12음계에는 Ab와 Db이 없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Fm 코드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F, Ab, C 대신 F, G#, C를 써야 하고, Bm 코드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Bb, Db, F 대신 Bb, C#, F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각 화음에 있어야 할 단3도 대신 증2도가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도 이것을 알았고, 그 중에서는 이 증2도의 고통(?)을 의도적으로 활용해 작곡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 F단조는 가장 어둡고 괴로움과 비통함을 가장 잘 표현하는 조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바흐의 제자였던 Johann Ludwig Krebs의 "프렐류드와 푸가 F단조"를 중간음률과 평균율로 각각 연주해 비교하는 영상이 있다. 처음 연주하는 것이 중간음률이고 둘째가 평균율이다. (화질과 음질은 별로지만 두 음률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덤으로 중간음률로 연주한 파헬벨의 샤콘 F단조도 들어보자.
하지만 G#과 Ab, D#과 Eb, 이런 이명동음들 사이에서 항상 하나만 골라야 하는 상황은 작곡가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 G#과 Ab을 모두 연주할 수 있게 검은 건반을 둘로 쪼개 놓은 신박한 오르간이 등장하기도 했다. 덕분에 이 오르간에서는 Emaj, Bmaj, Ebmaj, Abmaj 등의 코드를 모두 연주할 수 있다.
중간음률은 평균율과는 다르게 장5도를 타고 아무리 올라가거나 내려가도 원래 음으로 돌아올 수 없다. 이는 방정식 \(\sqrt[4]{5}^{x}=2^{y}\)의 0이 아닌 정수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변에 로그를 씌우고 적당히 이항하면 \(\frac{x}{4y}=\log_{5}{2}\)가 되는데, 좌변은 유리수고 우변은 무리수이므로 해가 없다.)
때문에 위와 같이 건반을 쪼개 이명동음들을 처리한다고 해도, 무한히 많은 새로운 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Db에서 장5도만큼 12번 올라가면 C#이 나오고, 이 둘은 이명동음이지만, C#에서 장5도만큼 또 12번 올라가면 Bx(더블 샵)이기도 하다. 또 반대로 가보면 Ebbb(트리플 플랫)이기도 하고, 이러면 끝이 없다는 게 금방 보인다.
이는 순정률이나 피타고라스 음률 같이 유리수를 기반으로 한 음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평균율이긴 한데, 12음계 대신 한 옥타브를 다른 수로 쪼개서 12음계보다 정확한 화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실제로 53음계 평균율을 가지고 실험을 해본 결과, 12음계보다 장3도를 더 4:5에 가깝게, 그리고 심지어는 완전5까지 더 2:3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에 대해 다음 글에서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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