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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낙서/음악

순정률과 중간음률, 그리고 그 너머 (2)

by 두들낙서 2021. 4. 16.

이 글은 시리즈이다. 이전 글을 못 봤다면 보고 오는 게 좋다.

5. 중간음률 (Meantone Temperament)

중간음률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보통 중간음률이라 하면 "1/4콤마 중간음률"(quarter-comma meantone temperament)을 말한다.

이 무시무시한 이름에 들어있는 의미는, 중간음을 만들 때 syntonic comma의 1/4만큼씩을 보정하겠다는 뜻이다. 중간음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뭘 보정한다는 것일까?

피타고라스 음률이 기억 나는가? 피타고라스 음률을 사용해 C에서 E까지 가보자.

$$ C4 \xrightarrow{ \times \frac{3}{2} } G4 \xrightarrow{ \times \frac{3}{2} } D5 \xrightarrow{ \times \frac{3}{2} } A5 \xrightarrow{ \times \frac{3}{2} } E6 $$

3/2를 4번 거치면 C4에서 E6까지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갔을 때 C와 E의 진동수비가 64:81이었다. 이 값이 순정 장3도인 4:5와 얼마나 차이가 날까? 81/64을 5/4로 나눠보면 익숙한 숫자가 나온다. 바로 syntonic comma이다. 결국 syntonic comma는 "피타고라스 음률의 장3도와 순정 장3도의 차이"로 정의될 수 있다.

이제 수학적인 두뇌를 굴려보자. 우리가 원하는 목표는 장3도를 아름답게(4:5의 비율을 갖게) 만드는 것인데, 피타고라스 음률의 장5도를 얼만큼 보정하면 C에서 E까지 도달했을 때 완벽한 장3도가 나올까?

정답은 한 번 곱할 때마다 \(\sqrt[4]{5}\) 씩 곱하는 것이다. 4번 곱해지면 E6의 상대 진동수가 정확히 5가 될 텐데, E6를 두 옥타브 낮추면 상대 진동수가 5/4가 된다. 즉 C와 E 사이, 장3도는 5/4가 된다.

$$ C4 \xrightarrow{ \times \sqrt[4]{5} } G4 \xrightarrow{ \times \sqrt[4]{5} } D5 \xrightarrow{ \times \sqrt[4]{5} } A5 \xrightarrow{ \times \sqrt[4]{5} } E6 $$

이렇게 하면, C와 E 사이의 비(장3도)는 정확히 4:5일 것이다. 하지만 C와 G 사이의 비(완전5도)는 3/2보다 살짝 작아진다. 얼마나 작아지냐, 5도를 4번 진행했을 때 피타고라스 음률보다 1 syntonic comma씩 낮아지니까, 한 번 5도씩 진행할 때마다는 1/4 syntonic comma씩 낮아지는 것이다. 결국 피타고라스 음률에서, C에서 E까지 가는 중간 과정에서 나오는 음정인 완전5도가 1/4 syntonic comma만큼 낮아지도록 보정하면, 5도를 4번 올라갔을 때 완벽한 장3도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1/4콤마 중간음률이라는 용어의 의미에 대한 의문이 풀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완전5도가 완벽하지 않은 것에 대해 찝찝함이 남는가? Syntonic comma를 센트로 변환하면 21.5센트이다. 완전5도가 이 한 콤마의 1/4, 즉 21.5센트의 1/4인 약 5.4센트밖에 낮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타협이 과연 앞 글에서 본 5-제한 순정률보다 나은 걸까? 물론 C, F, G같은 단순한 코드들은 정확히 4:5:6 비율을 가지기 때문에 순정률로 했을 때가 낫다. 하지만 C, F, G 코드로만 구성된 곡은 많지 않다. 실용적인 음률이 되려면 D, E, Dm, Am와 같은 코드들도 조화롭게 들려야 한다. 순정률에서 Dm 코드를 구성하는 D:F:A의 진동수 비율을 따져보면, F와 A 사이(장3도)는 딱 4:5이지만, D:F(단3도) = 27:32, D:A(완전5도) = 27:40이라는 비율을 갖는다.

D음을 기준으로 F, A가 가져야 할 이상적인 진동수비와, 5-제한 순정률과 중간음률로 나타냈을 때의 진동수비와 센트 값을 모두 표로 나타내 보자. 중간음률이 대체로 이상적인 진동수비의 센트 값과 더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상적인 완전5도의 센트 값인 702.0에서 1/4콤마의 센트 값인 5.4센트를 빼보면 실제로 중간음률에서의 완전5도의 센트 값인 696.6이 나오는 것도 확인해볼 수 있다.

음이름 5-제한 순정률 중간음률 이상적
진동수비 센트 진동수비 센트 진동수비 센트
D 1 0 1 0 1 0
F 32/27 294.1 \(\frac{4}{{\sqrt[4]{5}}^3}\) 310.3 6/5 315.6
A 40/27 680.4 \(\sqrt[4]{5}\) 696.6 3/2 702.0

실감을 해보기 위해, 순정률을 사용한 Dm 코드와 중간음률을 사용한 Dm 코드를 비교해보자.

순정률

중간음률

피타고라스 음률의 방법을 사용하되, 말한 대로 1/4콤마씩 보정을 해나가는 방식으로 12음계의 음들을 모두 만들어 보자. 식은 생략하고 근삿값만 표에 적겠다.

음이름 상대 진동수 음이름 상대 진동수
Gb0 0.089 Gb4 1.431
Db1 0.134 Db4 1.070
Ab1 0.2 Ab4 1.6
Eb2 0.299 Eb4 1.196
Bb2 0.447 Bb4 1.789
F3 0.669 F4 1.337
C4 1 C4 1
G4 1.495 G4 1.495
D5 2.236 D4 1.118
A5 3.344 A4 1.672
E6 5 E4 1.25
B6 7.477 B4 1.869
F#7 11.180 F#4 1.398

표에서 알 수 있듯, F#과 Gb은 "같은" 음이어야 하는데 (이것을 이명동음적 상등; enharmonic equivalence이라고 한다.) 상대 진동수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수학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C에서 출발해 \(\sqrt[4]{5}\)만을 곱해서 만든 음(F#)과 \(\sqrt[4]{5}\)만을 나눠서 만든 음(Gb)이 같은 음일 리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왜냐하면 F#과 Gb이 같다고 이야기할 때에는 12음계 평균율을 사용한다는 전제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서 당연히 F#과 Gb이 같은 음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러면 중간음률 역시 문제가 있는 시스템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자세한 건 바로 뒤에서 설명한다.

6. 중간음률의 화성학

Dm 코드부터 제대로 표현이 어려웠던 순정률과는 달리, 중간음률에서는 굉장히 많은 화음들을 정확히(전5도의 1/4콤마 차이를 무시하면) 표현할 수 있다. 위의 표에는 13가지 음이 나와있는데 이 중에서 Gb을 뺀 나머지 12개의 음들로 12음계를 구성했다고 치자. 그러면 메이저 코드 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화음들이 "정확히" 표현된다. 화음의 이름을 먼저 적고, 괄호 안에는 구성음들의 이름을 적었다.

Db (Db, F, Ab) / Ab (Ab, C, Eb) / Eb (Eb, G, Bb) / Bb (Bb, D, F) / F (F, A, C) / C (C, E, G) / G (G, B, D) / D (D, F#, A)

그 외의 메이저 코드들은 4:5:6의 비율을 갖지 못한다.

비슷하게 다음과 같은 마이너 코드들도 "정확히" 표현된다.

Bbm (Bb, Db, F) / Fm (F, Ab, C) / Cm (C, Eb, G) / Gm (G, Bb, D) / Dm (D, F, A) / Am (A, C, E) / Em (E, G, B,) / Bm (B, D, F#)

고전 화성학을 잘 알고 있다면, Gb와 F#이 이명동음적 상등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Gb와 Bb은 장3도이지만, F#와 Bb 사이는 장3도가 아닌 감4도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중간음률에서 Db 화음이 "정확히" 표현되지만 Gb 화음은 그렇지 않은 것이 이 사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Gb 화음을 구성하는 음은 Gb, Bb, Db인데, 우리가 처음에 12음계를 만들 때 Gb 대신 F#을 사용해서 구성하자고 했기 때문에, 우리 12음계에는 Gb에 해당하는 음이 없고 F#만 있다. Gb 화음을 억지로 F#, Bb, Db을 사용해서 만들어봤자 F#과 Bb, 그리고 F#과 Db의 사이가 4:5 및 2:3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화음을 만들 수 없다. 이때 발생하는 F#과 Bb 사이의 음정을 감4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F#에서 4도만큼 올라가면 B이고, 여기서 B를 flat하게 만들어(소시켜) 감4도를 만드는 것이다.

비슷하게, D와 F# 사이는 장3도이지만, D와 Gb 사이는 감4도이다. 이것은 중간음률에서는 다른 음정이다. 또, Eb과 F# 사이는 증2도이고, 역시 단3도와는 다른 음정이다.

이제 좀더 실용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 실제로 16~17세기쯤 중간음률이 대세(?)이던 시절에 나온 오르간을 보면, 보통 다음 음들로 12음계가 구성되어 있었다.

Eb, Bb, F, C, G, D, A, E, B, F#, C#, G#

추정컨대, A 화성단음계(A, B, C, D, E, F, G#, A)나 A 상행가락단음계(A, B, C, D, E, F#, G#, A)만 보더라도 G#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을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Ab과 그 "아래"로는 갈 수가 없고 Eb부터 G#까지의 음들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F단조, 특히 화성단음계에 잠시 주목해보자. F 화성단음계는 F, G, Ab, Bb, C, Db, E, F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위의 12음계에는 Ab와 Db이 없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Fm 코드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F, Ab, C 대신 F, G#, C를 써야 하고, Bm 코드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Bb, Db, F 대신 Bb, C#, F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각 화음에 있어야 할 단3도 대신 증2도가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도 이것을 알았고, 그 중에서는 이 증2도의 고통(?)을 의도적으로 활용해 작곡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당시 F단조는 가장 어둡고 괴로움과 비통함을 가장 잘 표현하는 조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바흐의 제자였던 Johann Ludwig Krebs의 "프렐류드와 푸가 F단조"를 중간음률과 평균율로 각각 연주해 비교하는 영상이 있다. 처음 연주하는 것이 중간음률이고 둘째가 평균율이다. (화질과 음질은 별로지만 두 음률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덤으로 중간음률로 연주한 파헬벨의 샤콘 F단조도 들어보자.

하지만 G#과 Ab, D#과 Eb, 이런 이명동음들 사이에서 항상 하나만 골라야 하는 상황은 작곡가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시에 G#과 Ab을 모두 연주할 수 있게 검은 건반을 둘로 쪼개 놓은 신박한 오르간이 등장하기도 했다. 덕분에 이 오르간에서는 Emaj, Bmaj, Ebmaj, Abmaj 등의 코드를 모두 연주할 수 있다.

중간음률은 평균율과는 다르게 장5도를 타고 아무리 올라가거나 내려가도 원래 음으로 돌아올 수 없다. 이는 방정식 \(\sqrt[4]{5}^{x}=2^{y}\)의 0이 아닌 정수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변에 로그를 씌우고 적당히 이항하면 \(\frac{x}{4y}=\log_{5}{2}\)가 되는데, 좌변은 유리수고 우변은 무리수이므로 해가 없다.)

때문에 위와 같이 건반을 쪼개 이명동음들을 처리한다고 해도, 무한히 많은 새로운 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Db에서 장5도만큼 12번 올라가면 C#이 나오고, 이 둘은 이명동음이지만, C#에서 장5도만큼 또 12번 올라가면 Bx(더블 샵)이기도 하다. 또 반대로 가보면 Ebbb(트리플 플랫)이기도 하고, 이러면 끝이 없다는 게 금방 보인다.

이는 순정률이나 피타고라스 음률 같이 유리수를 기반으로 한 음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평균율이긴 한데, 12음계 대신 한 옥타브를 다른 수로 쪼개서 12음계보다 정확한 화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실제로 53음계 평균율을 가지고 실험을 해본 결과, 12음계보다 장3도를 더 4:5에 가깝게, 그리고 심지어는 완전5까지 더 2:3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에 대해 다음 글에서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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